옛날에 어느 선배는 날 보면 빨갱이라고 불렀다. 과방에 앉아 있거나 학교를 지나다 보면 나름대로 큰 소리로 부르곤 했다. 처음에는 좀 많이 당황했지만 내 성격이 특이해서 그런지 나는 그런 호칭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
그 선배가 빨갱이가 의미하는 사회적 맥락을 모르고 말하는 것은 아닐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파랑이를 파랑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빨갱이를 빨갱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느꼈었다. 물론 시간이 좀 지나니까 그게 꼭 그렇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의미로 불렀는지는 여전히 의문이기는 한데 아마도 별 생각없이 불렀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하는 사람만 계속 보시오..
이렇게 생각한데는 개인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당시 진행되던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의 구호에 대한 불만도 한 몫을 했다. 너무 수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다라는 표현은 현실적으로 보다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반공담론을 비껴가는 논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떠오르는 그 당시의 설득논거들은 아마도 1) 세계인권기준에 걸맞지 않다, 2) 내란법 등 일반 형법으로 충분히 처벌가능하다, 3)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4) 법리적으로 해석의 임의성이 크다, 5) 남북교류에 걸림돌이 된다 등이었던 것 같다.
이런 논거들 모구다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서 '정치사상의 자유'를 챙취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런 근거들은 한 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지니 바꾸자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오히려 '정치사상의 자유'보다는 현실적 필요에 의한 폐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느꼈졌었다. 그래서 당시에 나는 이런 구호를 외칠 경우가 있으면 "정치사상의 자유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라는 것 말고는 주체적으로 외쳐 본 적이 없다.
현재 국가보안법가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결국은 실용적인 필요와 개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지속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서 불안한 것을 다른 법의 입법을 통해서 '보완'하겠다니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이런 논의지형에서 '정치사상의 자유'라는 목표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과거의 논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실용적 논거들로는 반공체제 속에서 지속되어온 인식의 벽을 깬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볼테르의 경구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지향하지만 그것조차도 이 사회에서는 여전히 힘든가 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무 생각없이 나를 빨갱이라 부른 그 선배가 그립기도 하다. 사회적 맥락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누군가를 부르는 친근한 표현일 수도 있을 테니까. 슬프다. |